이오덕 선생 무덤가에...
![]() | ![]() △ <왼쪽>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오른쪽>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 ![]() |
![]() |
이오덕, 권정생 지음 / 한길사 펴냄.1만원
1970년대 초반, 마흔일곱살의 경상북도 산골 학교 교사인 이오덕(사진 왼쪽)씨가 안동에서 혼자 사는 서른다섯살 무명의 아동문학가 권정생(오른쪽)씨를 찾아갔다. 중견 아동문학가였던 이씨는 권씨의 동화 〈강아지똥〉을 읽은 뒤 해맑은 작품세계에 반해 일면식도 없었지만 먼저 권씨의 집을 방문했다. 열두살 차이, 띠동갑인 두 아동문학가는 금세 마음이 통했다. 두 사람은 이후 수백통의 편지를 수십년 동안 주고받으며 평생지기로 우정을 쌓았다. “저의 자취 경력은 이래저래 아마 이십 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저녁밥을 해 먹고 누우면 글에 대한 생각, 문우들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권 선생님의 작품집이 출판되도록 해야 할 것인데, 하고 며칠 밤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이오덕, 1973년 4월30일)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권정생, 1973년 2월8일)
'강아지똥' 읽은 이오덕 무명의 권정생 찾아가
1970년대부터 평생지기 수백통 편지글이 책으로
이씨는 세상의 번잡함을 거부하고 안동땅에 틀어박혀 홀로 어린이문학에만 몰두하는 권씨의 작품을 알려 빛을 보도록 했다. 권씨 역시 문학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이씨와 함께 나눴고, 창작을 마치면 가장 먼저 이씨에게 글을 보내 평을 들었다.
“요즘 저는 아동문학에서 아주 철저하고 과감한 태도로 평을 쓰고 논리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안일무사주의와 문단출세주의로 흐리멍텅하게 되어 있는 우리 아동문학을 일깨워 전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이오덕, 1974년 11월23일)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건넛집 살구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며칠 전 창동이네 할머니가 산에서 내려오시는 걸 보니 할미꽃을 따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으셨더군요.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습니다.”(권정생, 1985년 4월11일)
이씨는 권씨와 주고받은 편지 하나하나에 직접 제목을 달아 보관해 왔다. 5년 전, 이씨는 출판사에 편지들을 보냈다. 권씨는 사실 책을 내길 원치 않았지만, 결국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지난 8월 이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권씨는 이씨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책의 서문으로 썼다.
“선생님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일하는 아이들〉에 나오는 그런 개구쟁이들과 함께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 밑 시골집 마당에 둘러앉아 옥수수 까먹으며 얘기 나누시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선생님, 이 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씨는 임종 전에 일절 조문객을 받지 말고 부고도 장례 이후에나 알리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이 묻힐 곳 근처에 세울 시비를 지정해 남겼다. 시비 하나에는 권정생씨의 〈밭 한 뙈기〉를 넣고, 다른 하나에 자신의 시 〈새와 산〉을 넣도록 했다. 충주에 있는 이씨의 무덤가에는 지금 고인의 바람대로 두 시비가 마주보고 서 있다. 구본준 기자
한길사는 작고한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66)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묶어 최근 펴낸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17일부터 서점에서 급히 회수하고 있다. 권씨는 전화통화에서 “편지 속에 우리 동네 사람들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내용들이 책에 실리는 걸 그분들은 싫어한다”면서 “책을 회수해줄 것을 출판사측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길사측은 “권선생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서점에 깔린 1,200부를 거둬들이고 더 이상 찍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출간을 주도한 주중식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은 “두 분의 얘기를 꼭 세상에 알리고 싶어 내가 출판사쪽에다 책을 내자고 제의했고 권선생님한테는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사후에 보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2003년 11월.
나도 책이 나온다는 기사를 보고 책을 주문 신청했지만 끝내 구하질 못했다.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