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노무현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의 무차별 공격에 진이 다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토로 하였을 즈음, 나에게도 힘든 시련이 찾아왔었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던 중 뭔가 이상하니 좀 더 자세히 검사를 받아보는게 좋겠다고 하여...결국 '암'으로 의심된다는 얘기와 함께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견에 앞이 깜깜하고 마음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던 기억. 몸에 힘이 쭉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5월.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앞으로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약을먹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자고 하여 6개월에 한번씩 거금을 들여 검사를 하고 약을 먹고있다.별일없음을 알고 남은 세월 참되게 살겠노라 다짐도 했지만....
(노짱이떠나신날 아침, 나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서럽게 울며울며 늦은 아침을 겨우겨우 뜨던 애엄마를 뒤로하고 난 아주 사적인 일을 보러 나갔다. 후회스럽다.
애엄마와 늦은 밤 조계사에서 조문을 하고 걸어서 대한문앞엘 갔지만끝이 보이지 않는 추모행렬에 동참도 못했다
여름에 봉하에 가자는것도 아직 못갔다)
기본적으로 일년에 4번 병원을 꼭 가야한다. 두번은 검사, 두번은 의사면담(검사결과)이다. 병원을 가기위해 시간 조정을 하는 것도 일이다. 눈치를 봐야한다. 그래서 1년계획이 나오면 쉬는날, 일찍 끝나는날, 조퇴할 수 있는 날을 챙긴 다음 담당의사 시간과 맞추어 예약을 한다. 오늘이 쉬는 날이다. 그래서 2주전 검사한 결과를 알기위해오늘 예약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병원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지루하지 않기 위해선 보거나 들을게 있어야 한다.
Beethoven 9 sym. 전곡을 들으면 얼추 지루하지 않게 가겠다 싶어 찾는데 cd가 없다. 흠....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판소리cd에 눈이간다. 그래 몇년전 아주 잘 들었던 박초희 선생의 '흥보가'를 듣자. 챙겼다. 그리고 우리 노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쓴 '노무현이, 없다'-학고재-도 챙겼다.
지하철에 자리가 있다. 엥간해서 앉지를 않지만 오늘은 앉아보자. 시간대도 어른들이 많이 탈 시간이 아니다. 흥보가를 듣는다. 귀에 달라붙질 않는다. 책을 펴 본다. 책도 안 들어온다. 결과를 보러가기에 마음이 안정이 안된 탓일까? 책은 덮고 흥보가를 다시 겨우겨우 듣는둥 마는둥cd1.이 끝난다. 갈아탈 곳이다.
간당간당 시간에 맞춰 병원에 왔다. 10분정도 딜레이다.
별 이상없단다. 약만 꾸준히 먹으면 탈없이 살겠단다. 1분 면담했다. 그래도 이상없다니까 좋다.
서론이 길었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노무현이, 없다'를 본다. 잘 읽힌다.
그런데 정훈이씨의 글에서 자꾸 멈춘다.
눈물이 난다. 이러면 안되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정훈이(가수 정훈희가 아니다)씨가 날 울렸다. 만화가이다. 한겨레신문연재작가다. 남자다. 본명은 정훈.
지나가다 똥을 밟아도 노무현때문이라고, 노무현이 길거리 청소를 깨끗하게 안해놔서 그랬다고 개나 소나 노무현을 씹던 시절 유행했던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다'를 제목으로 삼은그림과 글이다.
아직도 노무현탓을 하는 사람들이 꽤있다. 버러지보다도 못한 것들이다.
정훈이씨가 쓴 글과 그림을 옮긴다.
(*책에 실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그림은 모두연한 노란색 바탕에 부드럽습니다. 제가 사진을 빛이 없는 늦은 시간에 찍어 그림의 제맛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꼭 책을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정훈이
만화가.<씨네 21>과 <한겨레>에
'정훈이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정훈이의 내 멋대
로 시네마> <정훈이의 뒹굴뒹굴
안방극장> <트러블 삼국지>등이
있다.
01
2001년 어느 날, 우연히 정치인 홈페이지 순례에 나섰다가
노무현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공동구매한 듯이 똑같이 찍어낸 다른 정치인의 홈페이지와 달리
그곳엔 지역주의와 맞서 싸운 돈키호테가 있었고 커뮤니티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어느새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관심했던 게 너무 미안했다.
02
민주당 내의 노무현 흔들기. 지지율 하락.
결국, 김민석이 정몽준 캠프로 넘어갔다.
그 사건은 커다란 충격이었고
지지자들은 노무현 후보에게 돈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어머니의 라식 수술비, 10년 근속 메달, 돌 반지.
소시민들의 정치 후원금 행렬이 이어졌다
기존 정치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유쾌한 정치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03
사상 유례없는 소시민들의 정치 후원금 행렬에도 언론은 침묵했다.
너무 화가 나 플래시로 UCC를 만들어 뿌리기로 했다.
후원하는 지지자들의 사연을 모아 내가 가입한
개혁국민정당의 창당 구호 "유쾌한 정치반란"에서
제목을 따서 만든 플래시 <유쾌한 정치반란>은
올리자마자 인터넷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나중에 그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유쾌한 정치 개혁>이란 이름의 TV-CF로도 만들어졌다.
04
선거 유세장에 갔다.
일산 주엽동 백화점 앞 광장에서 정몽준과 어깨동무를 하며
무대 차량에 오르는 노무현을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노짱의 모습이다.
05
투표 전날, 친구들에게 일제히 전화를 돌렸다.
안부 10초, 기호2번 투표 권장 30초,
내일 확인 사살 한다는 협박 5초,
친구들과 우정 쌓기 합이 1인당 45초.
06
상식이 통하는 세상 만들어 달라고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내 상식으로는 꿈도 못 꿀 이유로 탄핵을 당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탄핵 전 매일 집회에 나가는 것뿐이었다.
탄핵 당하던 날.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백여 명의 지지자들이 시위했다.
예상 외의 적은 인원에 세상에 대한 원망까지 쌓였다.
국회의장의 방망이가 두드려지고 모두 드러누워 울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수천의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저 멀리 수만 명의 행렬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07
2009년 5월 23일 오전. 전화벨이 울리다.
자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한동안 아무 일도 못했다.
나는 늘 내 상식은 노짱의 상식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노짱은 내 상식을 뒤엎고
그의 상식을 실천했다.
08
언젠가 한산해지면
내가 낸 책 예쁘게 포장하고
꽃편지 넣어 꼭 찾아뵙고
사랑한다며 고백하고 싶었던 그곳 봉하마을,
하지만 내가 봉하마을에 갔을 때
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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