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도는 삶.

요즘 읽을 책들이 꽤 밀려있다.

집에서 보는책도 줄을 그으면서 봐야할 책, 봤던 책을 다시 보는 책, 잠자기 전에 보는책, 보고싶어서 산 책 등이 쌓여있다.

<젊은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내 책상 옆에 둔지 일주일째 첫장도 못열어보다가 어제 머릿말을 읽었다.

젊은날의 깨달음은 여러 유명인사의 젊은시절 회고담이 담겨있는 책이다.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인 박홍규선생이 머릿글을 썼다.

박홍규선생이 52년생이고 2005년에 썼으니 쉰이 넘어서 쓴 글이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글엔 연대, 우리, 함께에 방점이 찍히기 마련인데 당당함을 바탕으로 고독을, 인간을, 꿈을, 그리고 패거리문화의 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젊은 벗이여, 당당하게 살아라


젊은 날, 오로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맑은 눈에 어른들이 당당하지 않게 보여, 그들처럼은 살지 않으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작문 숙제에 나는 선생 아닌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다. 선생인 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 탓이었다. 그러나 나도 선생이 되었고, 나의 선생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젊은 벗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살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홀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떤 인연의 무리든 간에 그 속에 뒤섞여 자아를 잃고 살지 말라. 어려서부터 무리 속의 삶에 지쳤던 나는 부모 형제 처자까지 남들과 똑같이 대하고자 노력했다. 기타 혈연, 지연, 학연, 지연 따위는 철저히 무시했다. 따라서 동창회든, 종친회든, 등산회든 골프회든, 친목계든 관혼상제든, 교회든 절이든 일체의 모임에 가지 않는다. 젊은 벗이여. 고독해라!

내게는 그런 인연으로 맺어진 동기, 동료, 선후배나 스승, 제자, 벗이 없다. 물론 스승, 제자, 벗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배울 만하면 스승이고, 가르칠 만하면 제자이며, 마음이 통하면 벗이다. 그들은 오직 인간 대 인간으로 그렇게 관련될 뿐이다. 따라서 스승이라고 해서 우러러볼 것도, 제자라고 해서 낮춰 볼 것도 아니다. 사실은 모두 벗이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젊은 벗이여, 모든 인간을 벗 삼아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지배, 명령, 복종, 지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벗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어떤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부터도 자유롭고, 영웅주의나 천재주의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가치를 지켜라. 그리고 그런 세상을 꿈꾸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라.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현실에 대한 도전 없이 당당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젊은 벗이여, 꿈꾸고 맞서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참된 벗일수록 각자가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굽히지 않으며 실천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 없이, 아니 아무 생각 없이 남들에 떠밀려 사는 사람들을 어려서부터 많이 보아온 나는 남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거나 글을 쓰는 자를 경멸한다. 특히 자기 생각을 굽히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사는 자를 스승은커녕 벗으로도 삼지 말라. 젊은 벗이여, 굽히지 말라!

물론 이처럼 당당하게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특히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젊은이여, 그럴수록 더욱더 당당하게 살라고. 오로지 당당하게 살라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젊은 벗이여, 저 도도한 패거리 문화가 만드는 억압과 불평등, 무사상과 무실천의 야만을 당당하게 갈아엎어라.

2005 4월에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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