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한겨레
»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0. “아니 대가리가 왜 이렇게 작아.” 몇 년 전 배우 이나영을 우연히 조우하곤 건넨 첫 마디다. 그렇다. 이런 망발이 있나. 허나 곤조도 야지도 아니다. 나, 그런 거 없다. 그거부터 보이는 데 어떡해. 대형유인원의 두개골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소형인데. 그렇다고 두상 협소해 공기저항 작겠군. 이럴 순 없잖아. 담고 있진 못하는 성정이고. 하여 하릴없이 그렇게 뱉어져 버렸다. 건방도, 반감도 아니다. 그저 판타지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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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난 김에 연예인 바라보는 내 감각 일반 좀 털어놓자. 참고하시라고. 예를 들자면, 한예슬. 난 그녀가 웃기다. 가소롭거나 같잖단 게 아니라, 코믹하다. 자기가 너무 예뻐 스스로 못 견뎌 하는 표정들 목도하면 박장대소하고 만다. 다 큰 어른이 자기가 너무 대견해. 그거 참 웃기잖아. 또 예를 들면 비. 한때 그리 기특했던 청년이 제 성공에 겨워 어느 순간 느끼해져 버린 걸 발견하고 나면 주섬주섬 애처롭다. 그 지성의 성장지체가. 뭐 하여간 대충 그렇다. 게다가 난 그들 빨아주는 거, 못한다. 기스 방지용 뺑끼칠 해주고 그 대가로 면접권 확보하는 상부상조, 그거 못 한다고. 구강흡인력, 것다 못 쓰겠다고. 남세스러워서. 하여 이 짓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초장부터 우려된다. 하지만 사기 칠 순 없잖아.

 

난 또 영화라는 상품에 우리 사회가 무슨 공공의 부채 따위 지고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다른 장르보다 더 각별한 예우가 마땅하단 생각도 않는 종자다. 영화 싫다는 게 아니다. 영화 참 좋다. 다만 영화라고 유독 위대할 건 없다 여길 뿐. 실은 영화 안목도 별반 없다. 임권택이 왜 거장인지도 모르고 박쥐가 왜 상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리 길게 주절거리는 건 뭐 대단한 자랑이라서가 아니라 향후 진행할 인터뷰들이 필연적으로 가질 한계부터 자백해두려는 게다. 그래서 용서해달란 게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 되니 볼 테면 보고 말라면 말란 강짜 되겠다. 자 그럼 그 첫 번째, <하녀>의 전도연.

» 임상수 감독의 ‘하녀’로 칸에 간 전도연
 

1. 그녀를 만난 건 어느 오후의 삼청동 모 카페.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채 안 된다. 그나마 전후로 사진 박느라 부산떨고 나니 내 기준으론 대면이 거의 찰나다. 시간은 또 어찌 그리 야박하게 관리하는지. 사람 만나러 갔는데, 배우 하나가 스케쥴 콘베어벨트 타고 스르륵 통과한다. 씨바 이게 뭐 인터뷰야. 그냥 구경이지. 이따구 공장체제로 찍어내니 매체 인터뷰가 죄 뻔할 밖에. 어차피 서로 장사면서. 상도의가 없어, 조또. 그녀 책임은 아니다만 하여튼 이 시스템, 지랄 같다. 하여 당 인터뷰 목표는 애당초 단출했다. 한 가지만 묻고 오자, 한 가지만. 전도연은 어쩌다 배우가 되어, 어떻게 탑이 된 건가. 그러고 보니 아따 길게도 투덜댔다. 이제 진짜 가 보자.

 

2. 전도연, 코 앞서 보니 눈주름, 적당히 자글거린다. 미안타. 눈부시다 못 해줘서. 하지만 눈 안 부신 데 어떡해. 다만 묘하게 마음 놓게 만든다. 사람 같아서. 어쨌거나 대뜸 임상수, 싸가지 없지 않냐 부터 물었다. 감독이 어떤 이인지 이해해야 그 디렉션도 온전히 이해할 테니. 그렇게 임상수 받아들인 방식부터 궁금했다. (그리고 실은 그게 내가 임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라서. 한국적 가부장 규범과 위계, 한국적 영화 문법과 관습이 요구하는, 그 없어도 좋을 싸가지가, 그의 영화엔 없다. 윤리나 도덕 생략하고 타고난 제 동물적 템포로 그냥 혼자 가 버리는 그거. 이율배반 같겠으나 동일 맥락에서 난 이창동이 좋다. 왜. 그는 없어도 되는 싸가지까지 있어서. 우하하.)

 

아니란다. 자기도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여리고 섬세하고 따뜻” 하단다.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쿨한 척” 하는 거란다. 오히려 “소심해서 잘 삐진” 단다. 그저 “소통을 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관계 맺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그러는 거란다. 자기도 처음엔 걱정했단다. 머리 좋은 감독이 “뱀처럼 교묘하게 배우를 이용할까봐”.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 더란다. 그래서 좋았단다. 호. 감독더러 잘 삐진다니. 쿨한 척 하는 거라니. 그 판단의 옳고 그름 떠나 제 의견 피력에 유불리 따지지 않는다. 논평 이전에 리턴 피해와 챙길 잇속 계산이 먼저기 십상인데. 이거 맘에 든다. 잔머리가 없잖아. 특히 몸으로 부딪는 게 좋다는 대목,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일단, 드러낸다. 논리가 아니라 몸과 직관으로 세상 상대하는 이들의 기호. 확인 차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감독도 말로 설명치 못할 때는. “부딪혀 보면 알아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면.” 감독과 그의 디렉션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읽는다는 거, 이거 몸으로 세상 체득하는 자의 독법.

 

그럼 전작 감독 이창동과 차이는 뭐냐 물었다. 이렇게 푼다. “인간을 보는 것과 인간을 통해 사회를 보는 것”. 전자는 이창동, 후자는 임상수. 동의, 안 된다. 물론 내 동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정치하지 않아도 제 언어만 있음 족하다. 그러나 이건 전도연의 언어 같지 않다. 차용의 냄새 난다. 졸라 다그치려다 말았다. 그 정도 폼도 못 봐주면 담 인터뷰는 아예 안 잡힐 것 같아서. 아, 타협하는 나. 대신 그렇게 이해해둔 감독과 그의 지시가, 도저히 이해 안 갈 때는 어찌 하냐고 물었다.

 

“저는 감독님에게 100퍼센트 의존적인 배우거든요. 끊임없이 감독님에게 확인을 하죠. 저의 불안이나 저의 의심을. 어느 순간 감독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인물이 받아들여져요. 그 인물을 100퍼센트 알고 연기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그 애를 좀 알 거 같아지면 영화가 끝나는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그 인물과 가장 유사한 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끝날 때 마다 제 안에서 뭐 하나씩 찾는 거 같아요.”

 

그렇군.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걸 퍼다 쓰는군. 그렇지만 그렇게 묻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는.

 

“전 이해를 못하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못 해요. 전 항상 감독님이 저를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저는 다 할 수 있는 배우라고 말해요.”

 

오, 감독이 자신을 이해만 시킨다면,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 태도. 브라보. 이거, 배우 전도연 최고의 미덕이라는 데 한 표다. 그렇지. 배우란 그런 거지. 영화의 서사와 인물 위해 제 한 몸 고스란히 빌려주는 이들. 그게 재능 아니라 무슨 벼슬인 줄 아는 배우들 하도 부지기수라 이 대목에서 아싸 한 번 외쳐줬다. 그런 그녀에게 “전도연, 벗었다” 란 타이틀로 스타로서의 노고를 칭송해마지 않는 기사들, 얼마나 웃긴가. 스타라서 어쩌라고. 그들 찌찌는 세 갠가. 관람 가게. 아님 스타가 벗어줘 황송하나. 어떻게. 커튼 들고 달려가 줘.

 

이 대목서 궁금했다. 근데 이 여자, 자기가 그렇다는 걸 어찌 알고 배우가 된 거지. 그녀, 이렇게 답한다. “어쩌다 보니깐 됐어요.” 푸헐. 제 성공의 몇 할을 운의 몫으로 돌리느냐 하는 데서 자의식과잉의 정도가 드러나게 마련. 그러더니 이렇게 이어 붙인다.

 

“꼭 되어야겠다는 목표, 이런 거 없었어요. 어린 마음에 TV에도 나오고 또래 보다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런 게 그저 좋았어요. 저는 대개 평범한 애여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어요.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뭐 안 되면 결혼하면 되지 하고. 일이 좋아서여서도, 즐거워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불평 없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그럼 대체 자기 안에 배우가 있단 걸 언제 스스로 자각 한 건가.

 

“영화를 하면 감독이 신이잖아요.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지시대로 따랐어요. 그런데 <해피엔드> 정지우 감독님과 일하면서 내 생각을 말하고 그 사람이 내 생각을 받아주고, 그렇게 서로 동의를 구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찍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사람들은 <해피엔드> 찍을 때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저는 너무 즐거웠어요. 카메라 앞에서 거리낌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어요. 그래서 조명하시는 분이 어린 것이 욕심이 많네... 하셨었어요. 왜 보통 베드신 그런 데서 많이 감추려고 그러자나요. 제가 안 그러는 걸 욕심이라고 보셨나 봐요. 근데 전 감독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해 뭔가 만들어 가는 게 너무 재미있었고 처음으로 영화가 재미있어 졌어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오라. 그랬던 거구만. 그녀, 애초 직장인이었던 게다. 취직은 어쩌다 보니 타고난 제 자산 일부가 우연히 해당 직종의 요구조건을 적정 수준 만족시켜 가능했을 뿐. 그렇게 현장에 출근하는 연기 직공이었던 게다. 그러던 어느 날 최초로 공장장과 소통하다 자신이 주문받은 부품만 찍어내는 직능공이 아니라 스스로 설계까지 가능하단 사실에 신이 난다. 그리하여 연예인 전도연, 배우 전도연으로 각성이 시작된다. 이쯤에서 확인사살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뭐를. 글쎄 보면 안다.

 

무대 위에선 배우지만 끝나면 내려와야 하는 건데, 안 내려오는 이들 많다. 당신은 어떤가.

 

“저는 일을 안 할 때는 난 배우라는 걸 인식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전 평범해요. 평상시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지 하는 것도 없어요. 물론 카메라 앞에서는 예쁘고 싶지만.”

 

그렇군. 그녀는 비어 있군. 이거 칭찬이다. 복이다. 배우가 저를 비워 인물에게 제 한 몸을 빌려주는 데 과잉자의식만큼 후지고 같잖은 방해물도 없으니까. 그럼 어디까지 비어 있는 걸까. 노무현을 물었다. 좋다, 싫다 없단다. 이명박은. 마찬가지란다. 4대강은. 생각해 본 적 없고. 투표는. 아빠 때문에 한두 번 해봤단다. “자고 있는 데 나가서 1번, 1번, 1번, 2번 찍어라 해서.(웃음)”

 

이건 섹시하지 않다. 모든 배우에게 투사되라 요구할 순 없다. 그럴 수도, 필요도 없다. 허나 지들은 시민 아닌가. 소속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거, 이건 그저 개인의 취향이나 품성 탓으로 양해하기만 하고 말기엔 심통난다. 왜. 부러워서. 그런 배우들 가진 나라들이.

 

이제 그런 그녀가 <하녀> 은이를 어찌 받아 들였는지 물을 차례. 어쨌거나 <하녀> 덕에 만났으니 서비스는 해야지. 너무 갑작스러워 가장 난감했던 마지막 장면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물었다.

 

“은이는 뭘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애가 아니에요. 그런 의식이 없어요. 병식이는 자식을 검사로 키우려는 게 있었고, 해라는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인데, 은이는 지켜야 하는 그 무언가가 없는 애에요. 그냥 그게 좋아서 뭔가를 하지. 그런데 처음으로 남이를 통해 예쁘고 친절한 아이를 갖고 싶다는, 불친절한 세상에서 자신에게 친절한 아이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그런 희망이 그렇게 처절하게 짓밟혔을 땐,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해 안 갔는데 영화를 끝낼 즈음에는 저도 그럴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이게 전도연이 제 몸에 들인 하녀다. 인간의 하녀본성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건 감독 구라가 감당할 몫이니까. 난 배우 전도연만 궁금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질투 나는 배우 있느냐 물었다. 콤플렉스 좀 엿보려고. 그녀의 대답.

 

“난 내가 좋아요.”

 

우하하하.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한 마디. 이 자기애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무지하게 따져보고 싶었으나, 그 순간 스태프가 날 잘랐다. 그만 나가란다. 우라질. 이 기사 나가면 다음 기회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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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도연 어떤 배우냐는 내 질문에 이창동은 이렇게 한 줄 요약했다. “몸이 악기야.” 무슨 말인지 만나 보니 알겠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상 읽고, 읽은 그대로 제 속에서 퍼내, 야로 없이 액면가로 부딪히는 거, 그게 그녀 방식이다. 그러니 실은 그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전도연 속에서 전도연을 길어낼 뿐. 그 방식으로 그녀, 정상에 섰다. 하여 배우 전도연에 대한 내 버전 한 줄 요약은 이렇다.

 

전도연의 직업은, 전도연이다.

 

PS - 한겨레, 잘하자. 우리, 진짜 인터뷰 좀 하자고.

 

글 김어준 딴지일보 종신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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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게 그러니까 방송법 직권상정 현장이 국회 생중계되던 날이었다. 뭐 이종격투, 예견되었던 상황인지라 담담하게 각종 기술의 완성도 감상에 몰두하던 와중이었다. 음, 저쪽 조르기는 경동맥과 거리가 있군. 저래서 실신 되나. 이쪽 관절기 각도 어설퍼요. 요쪽 안다리 후리기는 제법이군. 그 와중이었다. 의장석 앞 발언대기석 부근에서 안경잡이 여성의원 하나가, 육덕 흰색 상의 여성의원에게 목덜미가 낚인다. 앗, 저것은, 국회 사상 최초의 여성 초크슬램이 시도되는 현장인가 하는 순간, 연보라 상의, 검은색 정장, 꽃무늬 상의 셋이 그래플링에 합류한다. 4 대 1. 반칙이다. 태그매치 상황이건만 안경은 터치할 동료가 없다. 로프 대신 의원석 다리 부여안고 버티다 겨드랑이, 양다리 동시 제압당해 본회의장 입구까지 사지 들려 속절없이 운반된다. 질질 끌려 나가던 안경의 막판 스탠딩, 흰색 상의의 헤드록 패대기로 끝장난다. 실신 KO. 내내 덤덤하던 나, 이 혼절 부감 샷에서 울컥한다. 이, 씨바.

» 김어준이 만난 여자

그때부터다. 내가 그 애처로운 안경잡이, 이정희를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렇게 1년여 관찰 끝에 그가 좋아졌다. 그렇다. 난 그가 좋다. 왜. 안 되나. 이리 자백부터 해두는 건 그래야 공평하다 여겨서다. 그리고 그래서, 이번 인터뷰, 최대한 야박하게 했다. 다시 한번, 그래야 공평하니까. 좋다고 물렁한 건, 볼썽사나우니까.(아, 나는 변태인가.) 어쨌거나 그리하여 오늘 인터뷰 목표는 한 가지다. 이정희는 과연 내가 좋아할 만한 자인가. 그렇다. 내가 기준이다. 왜. 떫은가. 뭐 그러든가 말든가. 자, 가 보자.

2 앉자마자 인사치레 생략하고 숨도 고르기 전에 물었다. 헌정 사상 최연소 정당 대표인데, 과연 본인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다 생각하느냐.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연다.

“음… 처음엔 되게 무겁다 생각했어요. 과연 내 안에 무슨 힘이 있어 이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 마음을 다해 일하는 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사랑하겠다, 남을 비판하기 앞서 내가 먼저 일하겠다던 마음. 결국 그거 아닐까. 유세 다니다 혼자 있는 어떤 순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처음의 그 마음을 유지하면, 앞으로 계속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건 아니다. 정치인 특유의, 제 인생에 자작 조명 때리는, 자기 연출의 정도를 가늠해보고 싶었던 게다. 여기서 통상, 조국과 민족 따위 등장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답, 심심하기 짝이 없다. 그럴 줄 알았다만. 자, 이제 본격적으로 까칠해질 순서.

초심, 좋다. 근데 초심 잃지 않겠단 결의만으로 대표까지 해도 되는 건가. 나는 대표를 해도 돼, 왜냐면 난 이런 사람이니까. 그런 자신도 없으면서 대표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강기갑 대표님은 언론에선 굉장히 강경하고 막무가내인 것처럼 비치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언론이 만든 그 이미지를 뚫고 강기갑 대표님의 마음을 본다는 걸 느꼈어요. 어느 순간 번뜩하고.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아, 정치라는 것이 말만으로 이념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결국 사람이 하는 거구나. 그런 걸 깨달았죠. 그런데 제 안에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게 어떤 건가.

“사진 찍히려고 겉모습을 만들어 내지 않는구나, 이 사람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그런 게 전달이 된다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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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전달하고 교감하는 능력. 그거 교주들 능력인데.(폭소) 자기한테 그게 있다는 걸 깨닫는 특별한 사건이라도 있었나.

“음. 이건 제가 미안해서 이야기 안 했던 건데, 작년 쌍용자동차 파업 때 물도 음식도 못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걸 지켜보는 게 굉장히 고통스럽더라고요. 누군가는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며칠을 그 앞에서 기다리면서 안에 계신 분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그런데 그 문자를 보고 안에 계시던 분들이 많이 울었다고 하셨어요. 고맙다고. 해결하지 못한 게 굉장히 가슴이 아프고 반성이 되면서도, 그런 말씀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찌릿찌릿한 걸 느꼈어요.”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다는 건가.

“정치는 연출이 아니다. 정치는 결국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약삭빠르고, 제 앞길만 찾고, 제 이익만 추구하고, 만날 거짓말하는, 그런 정치를 깰 수 있을 것 같다….”

박하게 되물었다. 좋다. 그런데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이었다. 당시 상황에선 분명 운동권이었는데 왜 그만두고 제 살길 갔나. 분명 졸업하고 쌍용차 현장 같은 곳 가는 선배들 있었을 텐데.

“무서워서 못 갔어요.(웃음) (어릴 적 단칸방 살다가) 연립주택의 생활, 안정된 삶,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들. 현장을 생각했을 때 그런 게 제 뒷덜미를 잡았어요. 겁이 났던 거죠.”

반성의 표정연출도 없다. 그냥 무방비로 실토한다. 이건 솔직한 게 아니다. 능력이다. 그래서, 더 까칠하게 나갔다.(역시 난 변태인가.) 그런데 본인과 다르게 계속 그 길 갔던 이들이 있다. 그들 제치고 당대표가 된 거다. 새치기 아닌가.

“오랫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길 오신 분들이 계시죠. 그런 분은 제가 비례대표로 들어갔을 때 굉장히 낯설어하셨을 거 같아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나. 그런데 기다려주시고 또 받아주신 게 굉장히 고마웠어요.”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미안함은 없었는가 말이다. 없음 말고.(폭소)

“음. 미안함… 생각해보니까 제가 거기 머무르는 사람이 아닌가 봐요. 그래서 그런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나 봐요. 낯설어하셨을 거란 게 아마 미안한 감정이겠죠. 그런데 미안한 데 머물기보다 그래서 더 많이 물어봐야겠다, 더 많이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일했어요.”

기왕 나선 거 끝까지 까칠하게. 서울 법대, 전국 수석, 학생회장, 사시 합격까지 경쟁에서 져본 적 없고 그래서 그만한 대우 항상 받다 보니 그런 데 익숙해져서, 좋은 게 주어지면 난 당연히 그런 자격 있다고 넙죽 받아들인 거 아닌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대표가 그렇게 좋은 직책인가요?(웃음) 의원직에 대해서 저는 귀중하게 써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쌍용차 때도 제가 만약 들어가면 입건될 거라 생각했어요. 의원직 상실할 수 있단 판단하고 추진했던 거였어요. 그런 마음이 민주노동당에는 일상화되어 있어요. 다른 정당과 전혀 다른 문화죠. 그런 게 내가 이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안 하게 되는 배경이었죠.”

으하하하. 브라보. 좋았어. 근데 왜 하필 민주노동당인가.

» “진보정당의 꿈인 대통령, 준비해야죠” 이정희 민노당 대표

“제가 법조인이 된 결정적 계기가 동두천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예요. 그때 ‘주한미군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우리 사회의 구조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평화와 화해의 방법으로 풀지 않으면 주한미군 문제 안 풀린다. 그걸 풀려는 곳이 민주노동당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분당이 되고 또 비난을 받는, 그 이유 때문에라도 나는 민주노동당을 선택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진보신당이라고 주한미군 문제 관심 없는 게 아니고, 어려움 따지자면 막 시작한 진보신당이 더 어렵다. 당세를 봐도 그렇고.

“진보신당 갈 마음은 없었어요. 이건 말씀드리기 좀 조심스럽지만, 종북주의란 용어를 우리끼리 쓰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럼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잘못 생각한 건 뭐냐.

“잘못이란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아요.”

그렇겠지. 본인은 예의 바르니까.(폭소)

“다만 아쉬움은 있어요. 단일화한다고 이기겠나, 저희라고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요. 이렇게까지 우리가 희생해야 하나. 그런 생각 왜 안 했겠어요. 하지만 국민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가 미리 끊지 말자. 국민들이 우리에게 달성하도록 부여한 책무, 해야 하는 최소한의 목표들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면 나머지는 국민들이 한다. 진짜 될까 의심하며 국민들의 폭발력을 미리 재단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좋다. 그런데 대표라면 개인 성향 떠나 정치적 이해득실 따지며 전략적 사고 해야 할 때 있을 거다. 그런 게 본인과 맞겠는가.

“제 생각은 그래요. 민주노동당이 협상을 굉장히 잘해서 많이 따오는 것, 그게 우리가 추구할 방식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협상력 없는 사람이라 보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이상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현실에서 출발한다. 허풍과 과장, 술수의 정치를 버리되 협상이 성사되면 반드시 책임진다. 그러나 만약 정당한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싸워서 이긴다.”

정당한 요구가 거부되면, 싸워서 이긴다는 건 이번 재보궐 경우 광주에 해당되나.

“그렇습니다.”

이후 선글라스 착용 여부부터 의상 구매처까지 총 3시간을 고문하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래서, 대통령 할 건가.

“진보정당의 꿈이죠. 포기할 수 없는. 준비해야죠.”

3 평생을 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살아내는 자, 극히 드물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타고나야 한다. 이건 가르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게다가 그로 인한 비용을 감당해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더 어렵다. 그 획득의 노정은 대단한 분량의 용기와 그것이 그저 곤조에 머물지 않도록 성찰할 지성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타고났다고 모두 그리 살아내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노무현은 그 두 가지가 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대통령 노무현조차 자연인이었다. 그게 현실 정치인으로서 옳거나 바람직한 건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그리도 슬퍼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자연인으로 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또 알았던 게다. 그게 연출 없이 살아내는 자의, 힘이다.

진보진영 누구도 거기 도달하지 못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권영길도 강기갑도 노회찬도 심상정도. 그들은 그들의 주장과 동일시되었다. 하나의 캐릭터였다. 안타깝게도. 그런데 이정희는 거기 근접한 최초의 진보 정치인이다. 사람이, 보인다. 내가 대놓고 그를 응원하는 이유다. 으라차차.

PS - 1년 전, 그를 혼절시킨 한나라당 여성 4인방은 비례대표 정옥임, 이은재, 김옥이, 그리고 수원시 권선구 정미경. 그들의 차기 낙선을, 바라 마지않는다. 어떠냐, 나의 뒤끝 작렬이. 약 오르지. 크하하하.

부록. 이정희의 한 줄 평.

이명박 - 고통스럽다.

정세균 - 상황과 한계 넘어야.

안상수 - 남 탓.

박근혜 - 생각 깊은.

나경원 - 넘어가죠.

유시민 - 언급했으나, 비보도 요구.

» 이정희 대표 프로필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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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아
마지막 언론인터뷰 나선 신정아
“사실 확인은 불가능했다”

신정아. 마땅한 정도 이상을 치렀다 여겼다. 비비케이(BBK) 따위로부터 대중 관심 분산시킬 소재가 절실했던 2007년 이명박에게, 신정아는 참으로 요긴했으니까. 하여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는 게 공평하다 생각했다. 그게 염치다. 그 무자비한 핍쇼에 징발당한 그를, 기꺼이 관음함으로써, 저들 기획에 동참하고 만 나머지들로선 말이다. 그의 변, 믿고 말고는 두 번째 문제라. 그리 판단했고 해서 만나고자 했다. 긴 기다림 끝에 마주 앉았다. 바로 본론 가자. 오늘은 갈 길이 멀다.

과도했던 징벌에 대한 측은지심부터 언급했다. 허나 이제 책으로 발언권 충분히 행사한 만큼 오늘은 야박할 거라 했다. 또한 신정아가 괴물도 위인도 아니며 선의와 허영과 거짓이 공존하는 보통 인간의 범주 내에 있다고 간주한다 했다. 끄덕인다. 오케이. 출발. 첫 몇 장 읽고 바로 알겠더라. 신정아, 자기 칭찬, 유난히 반긴다. 사건 직후 뉴욕서 택시 탔더니 몰려온 기자들 덕에 기사가 유명인인 줄 알고 사인받고는 큰 기쁨으로 여기더란 대목. 그 법석 중에도, 그런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런 장면, 많다. 누가 좋아했다, 관심 보였다, 격려해줬다.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나.

» 신정아

“그런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걸 쓴 건 그런 마음도 있었던 거 같아요. 분노. 내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니다. 전시 보러 왔던 사람은 신정아가 기획해 왔던 게 아니다. 전시 자체를 보러 왔던 거지.” 나, 인정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란 항변이군. “그리고 나름의 프라이드. 날 사랑해야 남도 사랑하잖아요. 전 절 놓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감옥에서도 항상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으려 했어요. 그게 거기서 절 버티게 한 것일 수 있어요.” 아우슈비츠에서도 식수 마시지 않고 자기 단장에 쓴 사람들이 결국 살아남았다. “저도요! 식수 오면 안 먹고 머리 감았어요.”(웃음)

모친이 살갑지 않고 엄격한 양반 아니었나. “맞아요. 딱 맞히셨어요.” 사람은 부모와 맺은 최초 관계를 평생 반복한다. 어린 시절 그런 결핍은 특히 연애를 지배한다.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상대를 필요 이상 불신하거나. 전자는 보상 원하는 거고 후자는 상처 피하려는 거고. “제가 그래요. 후자예요. 한두 번 만나고 더 이상 못 봐요. 그러다 누가 저한테 성심성의 다하면, 이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 과연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 하고.” 그건 프라이드 강한 게 아니라, 자기방어에 바쁜 거다. “너무 잘 아신다.” 그런 이들, 권위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강하다. “그것도 맞아요.”


» 신정아
여자들한테 잘난 척 말란 말 많이 안 들었나. “많이 들어 봤어요.” 친했던 여기자들, 등 돌리는 거 보며 평소 미움 살 행동 했을 거란 생각, 안 해봤나. “해봤어요. 예를 들면 제 옷 보고 어디서 샀냐고 물었는데, 난 친해서 편하게 답한 건데, 자긴 못 사는 거라면 미울 수 있었겠다. 그런 걸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이전엔.” 이런 건. 인정욕구는, 권위 있는 인물 실제 알게 되면, 부지불식간, 자랑한다. 그거 고깝다. “그런 이야기는 남들한테 많이 안 했어요. 은연중에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일부러라도 감추려고 애썼죠.” 글쎄. 여기까진 내가 자연인 신정아 이해한 기본 키워드다. “정말 잘 보신다.” 예리하니까.(웃음)

이제 사건. 변 실장, 왜 세세하게 언급했냐고 타박들 하는데, 남자들이 그러는 건 뜨끔해서다. 남 일 같지 않아서.(웃음) “제가 몸 팔며 출세욕에 불탄 게 아니란 거죠. 당시 전 오만 남자와 다 잔 여자가 됐는데, 신정아가 그런 여자로 변 실장님 머릿속에 남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진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어차피 우린 사적관계로 보호받아야 될 차원, 넘어섰기 때문에. 그럴 바엔 언론이 떠드는 공허한 이야기 말고 두 사람만의 진실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이해 간다. 근데 변 실장의 타격은. “그쪽도 괴롭겠지만 저희 집안이 제게 느끼는 배신감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출소 후 2년간 보지도 않았어요. 그로 인한 상처는 각자 안고 가야 될 몫이라 생각해요. 그게 우리 5년이, 설령 진실되었다 하더라도, 도덕적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 생각해요.” 변 실장 생각은? “확인해 본 적 없지만, 제가 알던 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설혹 남자라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해도 이 부분은 여자인 신정아 생각을 따라야 된다 생각해요. 신정아가 마음고생, 굉장히 많이 했잖아요.”

정운찬은. “정 총리가 서울대 미술관장직 제안했기에 익명으론 사건 설명이 안 돼요. 제가 그 일로 얼마나 검사한테 혼났는데요. 나중에 통화기록이나 서울대 내부서류 보니 달랐거든요. 정 총리 해명이랑. 왜 20초, 30초 이런 거는 여러 번 걸었는데 안 받은 거잖아요. 그럼에도 재판에선 저만 정신 나간 사람 됐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단 행동은. 예를 들면. “예를 들 수 없어요. 한마디면 되는 거라. 폭로가 아니에요. 거짓말이라니까 못 견뎌서 해명한 거지. 저로선 해명 이상은 아무것도 쓰지 않은 거예요.”

사건과 무관하나 한 가지 더. 비행기에서 김우중 회장과 조우, 있을 수 있다. 근데 대우사태 터진 다음핸데, 한국인 피하고 싶을 땐데, 김 회장이 먼저 접근해 ‘가진 매력, 세상 움직이는 데 활용하라’ 했단 거. 스물아홉 큐레이터에게. 어색하다. “진로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잖아요. 작은 것에 머무르지 말고 좀 크게 보고 개인을 발전시키라, 그런 의미였지 싶어요. 그 말이 사회생활 할 때 늘 마음 한구석에 큰 힘이 됐어요. 해명만 하다 보니까, 이런 일화까지 눈치 보며 빼야 하나 싶어서 남겨 놓은 거예요.”

» 신정아

이번엔 학위. 한참을 묻고 답했으나 브로커의 실재를 입증할 방도, 전혀 없다. 와중에 그는 위조와 사기의 차이를 결사 구분했으나, 그 태도가 이해가지 않은 건 아니나, 그건 본인에게나 중대한 차이일 뿐. 위조든 사기든, 자격 없는 학위란 점에서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하여 그 디테일, 실은 궁금치 않았다. 오히려 주목한 대목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캔자스대 지도교수 찾아간 장면. 그의 주장을 입증해 줄 상대 있는 거의 유일한 사안. 그러나 추천서 써줬냐, 아들 군복무했냐는 질문에 교수는 추천서도 기억 못했고, 아들 역시 군인 아니라 했다.

추천서야 기억의 문제라 쳐도 아들을 모를 리 없지 않나. 이에 그는 ‘에릭’이란 군인 아들, 분명 존재했다 강변한다. 편지까지 제시하며. 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통해 교수에게 연락했고 그로부터 이메일 받았다. ‘에릭’, 실재했다. 다만 자기 아들 아니라 처가 첫 결혼에서 얻은 자식이며 군복무한 것도 맞단다. ‘아들’의 정의가 달랐던 게다. 그의 주장, 사실이었다. 교수는 그와의 친분을, 적어도 그가 묘사한 만큼은, 사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단 점만 제외하고.

자, 외할머니. 그가 만약 허구의 브로커, 창작해낸 거라면 그건 절박한 자구행위거나 방어기제일 수 있다. 난 그 경우, 도덕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그가 애처롭다. 비난 더 하고픈 마음 없다. 그 디테일, 궁금치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다. 그러나 외조모 스토리는 다르다. 정신적 긴급구난으로 양해할 수 없다. 그게 허구라면, 그건 평소의 그가 어떤 이인지, 그 정신세계를 노출하는 결정적 단서일 수 있다. 하여 애초부터 오늘의 키는 외조모 파트라 생각했고, 그런 만큼 집요하게 따졌다. 보자.

외할머니, 궁금치 않다. 그건 가족사니까. 난 전직 대통령 부인 아니란 것만 확인하고 싶다. 책 읽고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지 않나. “외할머니 부분은요. 책에 쓴 게 후회스러워요. 엄마와 외할머니 마음을 너무 상하게 했고요. 전 자꾸 배후설 이야기하니까, 그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거고, 그 덕 보려 한 게 아니란 해명하려다 보니 언급한 건데. 그리고 사람들이 왜 우리 외할머니 궁금해하겠냐 생각했는데. 책에 있는 내용 이상으로는 더 이상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본인 이야기, 시장에 상품으로 유통시킨 이상, 독자에게 답할 의무 있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 지목되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질문 자체를 받고 싶지 않아요. 가족에 대한 얘기는 그만 물어봐 주시면 좋겠어요.” 가족이 누군지 밝히라는 게 아니다. 그분, 아니지 않으냐는 거지. “엄마 찾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게 다들 그것 때문에 그러니까.” 아니란 것만 밝히면 다 사라진다. “그런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아닌 걸 아니라고 해서 신정아가 입을 피해 뭔가. 외할머니도 엄마도, 피해 없다. 하지만 아닌 걸 아니라 않으면 엉뚱한 사람 피해 준다. “저는 하여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게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외조부 사촌여동생이 외할머니 그런 분 아니고 또 엄마 낳아 길렀다고 하던데. 임신을 착각할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분은 누군지 모르겠고요. 거기 가서 취재하고 엄마가 티브이에서 그런 식으로 당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마음 상해요.” 사람들이 그분일까 싶어 그러는 거다. “가족이랑 연관된 질문은 받고 싶지 않아요.” 그분, 가족 아니지 않나. 그에 답하지 않으면, 맞는 게 된다. 여태 답변들은 최소한 그 정황은 이해간다. 하지만 이 건은 이해 안 간다. “다음으로 넘어가시면 안 되나요?”

그분 맞다 하면, 그럼 안 쓸 거다. 그건 엄연히 가족사고 당사자가 공개 여부 결정할 일이다. 내게 그 권한 없다. 하지만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아니라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아무 말 할 수 없나. “네.” 그럼 당사자가 스스로 밝힐 가능성은 있나. “저는 있다고 봐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생각해요.” 그건 외할머니가 결정할 문제인가. “아니요. 어머니가 결정하실 문제죠. 어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아픔이 굉장히 응어리져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원치 않으세요.”

엄마가 막고 있단 건가. “두 분의 관계는 전 잘 모르겠어요.” 모친 상처 때문에 딸 상처는 뒷전이란 건가. “제가 외할머니 이야기 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엄마는 제가 잘못한 거라 생각하시죠.” 그런데 왜 밝힐 가능성 있단 건가. “외할머니는 그럴 분이라고 생각해요.” 외할머니와 의논한 적 있나. “아니요. 하지만 그렇게 하실 거라 생각해요.” 이쯤 되면 벌써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좀더 지나면 하시지 않을까요. 오만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진실이 있기 때문에. 전 코너에 몰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제가 못하면 외할머니가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럼 외할머니가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인가. “그럴 수 있죠.”

연결해 노 대통령 관련 한 가지만 묻자. 노 대통령이 ‘더 큰 일을 위해 세상에 나오라’ 했다고 썼다. “노 대통령은 정말 존경하는 분이셨다는 거. 그리고 저 같은 사람이 존경해서 누가 됐다는 정도로만 마무리할게요.” 정치입문 권했단 건가. 그것만 확인하자. “전혀 고려를 않은 건 아니에요. 그 정도만 말씀드릴게요.” 본인 스스로 고려했단 건가. “네. 출마하고 그런 거 말고.” 예를 들면. “‘웨스트윙’의 대변인, 그런 걸 굉장히 유심히 봤어요.”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까지는 아니고. 또 이걸로 뭐라고들 할 거 같아 조심스러운데, 이게 마지막 인터뷰니까, 뭔가 제가 할 수 있는, 문화정책 관련된 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도로 답할게요.”

» 김어준이 만난 여자

최대한 공평하려 했다. 비난이 대세라고 정도 이상 당하는 걸 외면하는 건, 나쁜 놈이 힘세다고 침묵하는 것 이상 비겁한 거니까. 그러나 인터뷰로는 팩트 체크 불가능. 해서 평소 누구의 견해도 사전 참조 않는단 입장 물리고 두 사람과 미리 통화했다. 둘 다 그를 만났고, 둘 다 그 판단을 신뢰할 만한 이들. 각각 이리 평했다. “참 괜찮은 사람이다.” “여자 허경영이다.” 이 정도로 갈리기도 쉽지 않다. 만나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단정하고 정연하다. 정서적 접근으론 전자의 판단에 쉬이 동의할 정도로.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우선, 꽃뱀 아니다. 그럴 타입, 아니다. 둘째, 그 주장들, 모두 거짓 아닌 건 분명하다. 셋째, 평균 이상, 자기중심적이다. 격려도 격찬으로 독해할 만큼. 넷째, 제 언어가 상대에게 어찌 해석될지 가늠하는 능력의 부실. 상당수 오해, 여기서 출발했다 본다. 다섯째, 그의 신경은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 있음을 증거하느라 조용히, 분주하다. 마지막으로 외조모와 노 대통령 부분, 앞뒤 어색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특히 외조모 파트, 거의 혈통망상 의심될 만큼.

애초 그를 판정하려 만난 건 아니다. 어느 순간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점, 인간적으로 미안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두 번째 책은, 내지 않는 게 좋겠다. 억울한 점 없지 않겠으나, 장담하건대 도움 안 되겠다. 이 난리,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면. 대신, 만약 실재한다면, 주제 넘은 요구 다만, 외할머니 설득하시라. 그게, 답이다. 어떤 사정으로든, 그럴 수 없다면, 침묵이 낫겠다. 모두에게. 당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PS 인터뷰 당일, 서태지 건 터졌다. BBK 물 타기란 음모론과 함께. 이지아와 법무법인이 동일하단 이유로. 그 시점, 바로 그 법무법인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고 있었다. BBK가 제물 삼았다 소문난 자가, BBK 연루 건을 변호했던 법무법인으로부터, 다시 보호받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렇게 그 법인이 다시 한 번 서태지를 BBK 제물 삼았다 회자되는 우연. 운명 따윈 믿지 않는다만, 참 어지간히 소설적이긴 하다. 끝.

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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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의도’로 복귀한 배우 황수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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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그렇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가 정한다. 뭐 그런 당연한 소리 하느냐. 이번엔 좀 달랐기 때문이다. 황수정을 차기 후보군 중 하나로 〈esc〉 팀장이 언급하기 시작한 건 벌써 몇 주 전이다. 별 알고픈 게 없다. 뭐가 있겠나. 그렇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가 등장한 어떤 드라마도 본 적 없다. 떠올릴 화면 한 컷이 없다고. 그러니 그가 아쉬울 리 없다. 소위 ‘물의’ 사건 역시 그저 ‘음, 이건 결국은, 남녀 문제다’ 정도가 당시 입력된 정보의 전부다. 남녀 문제에, 제3자가, 판관 노릇 하는 것처럼 같잖은 짓도 없다. 더구나 무려 10년 전인데. 그와의 인터뷰, 난 그리 받아들였다. 시큰둥할밖에.

근데 일정 잡혔단다. 어라, 내 반응, 시들했는데. 그래도 잡았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별 무반응에도 그와의 인터뷰 추진하게 만든, 그럴 가치와 필요 있다 판단한 팀의 궁금증, 바로 그게 궁금해진 게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로부터 듣고 싶은 게 있는 게라. 그는 들려주질 않는단 소리고. 왜 황수정이냐는 반문 대신 황수정을 검색했다. 영화로 복귀한단다. 10년 만인가. 아니네. 3년 전 드라마 했네. 그냥 간만에 출연이네. 그걸 복귀라 할 만큼, 그의 이미지는 여전히 ‘퇴장’이 지배하고 있단 소리다. 게다가 개봉 인터뷰 않는다고 욕먹는다. 허. 개봉 관련 노출이 너무 많다고 욕먹는 건 봤어도. 검색창 닫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번엔 왜 인터뷰 않는지를 물으러 인터뷰 가는 거다. 거참 희한한 경우일세.

요즘 연예인들, 어딘가, 만화적이다. 예를 들어 서우. 성형으로 만든 부자연스런 안면 입체감이 오히려 배우 존재감으로 작동한다. 사람들, 그걸 받아들인다. 인조인간도 아닌데. 나로선, 신기하다. 해서 그들,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구분 간다. 복장부터 태도까지, 뭔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그의 실물. 모르겠다. 섞여 있어도. 평범하단 게 아니다. 뭐랄까. 이물감이 없다. 아이러니다.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생경하다. 어째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요즘 보기 드문 뉘앙스라, 따로 짚어둔다. 자, 이제 가자.

» 배우 황수정

일단 자백부터 했다. <허준>도 못 봤다고. 해서 황수정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없다고. 뭐 기껏 찾아간 자가, 어렵사리 응한 자에게 할 말은 아니다만 사기 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당신을 궁금해하더라. 난 안 궁금한데.(웃음) 그래서 왔다. 뭘, 왜 궁금해하는지, 그걸 당사자로부터 확인하러. 그런데 난 10이면 10이라 하지 100이라 못 한다. 아니다 싶으면 아예 인터뷰 날린다. 이거 응한다고 나한테 배려나 찬양 따위 기대 말라 못부터 박았다. 단박에, 좋단다. 바로 그걸 원한단다. 10이면 10이라 하는 거. 여기서 시~작.

근데 인터뷰는 왜 안 하는 건가. “인터뷰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나요?” 호, 맞다. 기자들, 아무에게나 마이크 들이댈 무한권력 있는 양한다만, 그런 건 없다. 하고픈 이야기 없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럼 다시 묻자. 하고픈 이야기가 없는 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도 하지만 없기도 해요.” 왜. “사람들이 저한테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사생활에 대한 거잖아요. 제 연기나 일에 관한 평가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데, 저 개인에 대해선 꼭 답해 드릴 의무가 없으니까.” 호, 브라보. 속물적 호기심도 집단화되면 절로 공중의 알 권리가 되느냐고, 이리 대놓고 항변하는 연예인, 진작 보고 싶었다.


“옛날부터, 제가 신인일 때부터 그랬어요. 얼굴 한번 안 봤는데 독점인터뷰 그러면서 하지도 않은 말들 막 쓰고. 그땐 그런 일, 수도 없이 당했죠. 인터뷰를 해도 전혀 다르게 나가더라고요. 서로 필요에 의해 중요한 시간을 공유했는데 정작 의도한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매체 장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그런 걸 보면서 안 하는 게 낫겠다, 의미를 못 느끼겠다, 그런 생각 했어요. 그런데 그걸 또 기자분들은 쟤 뭐야, 하시는 거죠.” 어릴 때부터 기자들이 재수 없어 하는 스타일이었구나.(폭소) “쟤 뭐야. 쟤 무슨 빽 있어? 막 그러는. 그래서 되게 미운털이 많이 박혔어요.” 기자들 곤조다. 감히, 지가. 그럼 아주 지랄한다.(웃음)

근데 그런 처자가 배우는 왜 한 건가. 어떻게 시작했나. “엠시(MC) 공채시험 봐서. 1기로. 에스비에스(SBS)에서.” 드라마는. “6개월 만에 <해빙>이란 드라마로.” 굉장히 빨리 됐다. “북한여자 배역이었는데. 제가 아무래도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하고 볼도 통통하니까. 모던하게 생긴 스타일이 아니니까. 북한 이미지가 났나 봐요.” 자기 예쁘단 소릴 굉장히 조심스럽게 한다.(웃음) “재수 없다고들 그래서.”(폭소) 그럼 원래 배우 하려 한 건 아니었구나. “아니었어요. 되게 운 좋게 빨리 됐다고 할 수 있는데 전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던 게 아니니까 오히려 이게 나한테 맞는 길인가 하는 회의가 있었어요.” 언제부터.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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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연기는 왜 한 건가.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위에서 시킨 것도 있었고. 왜냐면 공채 엠시는 직원이에요. 상사가 너 이거 해, 하니까.(웃음) 어리기도 했고.” 그럼 연기는 직원으로 근무였네.(웃음)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적어도 욕은 먹지 말자. 그건 제 성격인데. 그런 생각으로 그냥 열심히 했어요.” 점점 익숙해지던가, 배우가. “반반이었던 거 같아요. 일단 제가 연기를 잘한단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에.(웃음) 내게 자격이 있나, 하는 갈등. 그리고 제 성격이 활달한 게 아닌데, 여기는 사람 대 사람이 만나 모든 걸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건 좋던가. 연예인들 보면 대부분 주목받는 걸 즐기는 성향인데. “전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이라고 누가 좋다고 하잖아요? 그럼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그 사랑이 떠났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않아요. 이건 그저 제가 선택한 삶이고 일이니까. 그냥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제 인생을 열심히 산 거지, 인기를 얻으려고 연기한 것도 아니고, 그분들 좋으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로 제 직업을 객관화해내는 연예인은 또 처음 본다. 그럼 인터뷰 마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연기자는 연기를 할 때만 연기자지, 단지 직업이 연예인이지, 나머지는 인간으로 똑같잖아요. 그런데 자꾸 사람들은 뭔가 다른 걸 듣고 싶어 하니까. 전 신비주의가 아니에요. 제가 색다른 뭘 드릴 게 없는 거지.” 그의 직업관. 하도 야무져 거의 야박하다.

그럼 당시 당신을 움직인 건 뭔가. “제 인생에 대한 만족. 이런 말 하면 거창하지만 전 제 인생 의미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행복인가, 어릴 때부터 그런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었어요. 아마 이런저런 책의 영향일 거예요. 그런데 당시 문제는 제가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단 거예요. 충전도 없이.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었어요. <허준> 전후로 4년 동안. 미친 듯이, 바쁘게 달리기만 했어요.” 워커홀릭인가. “그런 면도 있는 거 같아요. 생각해보면 어릴 적 아르바이트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은 대충 쉬어가며 하는데 전 바쁜 게 좋았어요.” 완벽주의자인가. “그런 면도 있고. 그런데 로봇이 아닌데 달리기만 하니 어느 순간 과부하가 걸렸어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거죠. 방전이 된 거죠. 모든 게 귀찮아지고, 불친절해지고.”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러면서 만인이 알고 계시는 그 일. 당시만 해도 여배우가 누굴 만난다고 하면 그 자체로 대단한 스캔들처럼 이야기되던 시절이라 누굴 만날 수도 없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상황에. 누군가 말 한마디만 따뜻하게 해줘도 마음을 파고들 때 있잖아요. 그때 그랬던 거 같아요.” 세상 모든 연애는 타이밍이니까. “맞아요. 인생엔 타이밍이 진짜 중요해!(웃음) 나 지금 고해성사 하는 건가.(웃음) 그런데 남녀 일은 당사자밖에 모르잖아요. 특히 연예인은 더더욱.” 그렇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인터뷰에 실을 이유가 없는 거 같아요. 아직은 타이밍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타이밍이 따로 오진 않는다. “그건 제가 정하죠.” 이런 똑똑이를 보게.(폭소)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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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그의 스토리, 한참을 듣다 보니 알겠다.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겠다. 실제 있었던 그대로를. 사연과 내막 듣다 생각나는 건, 한 가지다. 참, 억울했겠다. 대체 그 수준의 분통은 어찌 견딜까. 왜 그런 이야기 하지 않았나. “누구한테요?” 누구든. 언론이든. “그런 이야기 한다고 뭐가 달라졌겠어요. 누가 믿었겠어요.” 맞는 말인데, 사람이 억울하면 일단 하소연부터 하는데. “저 또한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모든 걸 믿었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는 거죠. 그걸 억울하다고 하는 게 오히려 사람 꼴 우스워지는 거잖아요.” 이건 뭐 하도 어른스러워 거의 어리석다 할 지경이다.

“그래도 제가 조사받을 땐 그 이야기 수도 없이 했어요. 나는 몰랐다. 그리고 검사 고소까지 했지만 아시다시피 싸움이 안 되는 거였어요.” 기자들한테는? “기자들은 이미 저에 대한 이미지가.” 재수 없었지 참.(폭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런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얌전하게 생겨 가지고 인기 많다고….”(웃음) 도도하게 굴더니 이년 잘 걸렸다, 이런 거.(폭소)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구나. “그렇죠. 그때는 말할 기회도 없었고. 그리고 지금은 구질구질 그걸 변명할 이유가 없고요.”

그런데 말이다. 일단락은 필요하겠다. 적어도 이 일을 계속하는 한. “연예인들, 이미지 중요하죠. 그게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도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제게 가진 호기심을 풀어줘야만 제 일이 잘된다는 걸 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럼 사생활 예쁘게 포장해 보여주면 잘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게들 한다. “전 그건 싫어요. 그리고 사람들, 제가 실제 어떠하든, 자기 인생 살기 바쁘잖아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 안 해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건, 당신 인생에선 중요하다. “절 연기자로 먼저 받아들이고, 나중에 그런 이야기 하면 몰라도, 그런 호기심으로만 저한테 접근한 건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직업적 특수성이란 건 있다. “전 매체들의 장사를 위한 소품이 아니잖아요. 제 인생이 장사 소품이 아니잖아요.” 이 대목에서 내내 씩씩하던 그, 그렁그렁하다. 문득, 애처롭다. “그리고 그것도 아셔야 해요. 이제 그 사람과 만날 이유도 없고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사람 또한 자기 삶이 있고 인생이 있는 거예요.” 이제 알겠다. 사람들이 왜 10년 전 그 순간에 여전히 묶여 있는지. 그리고 그는 그럼에도 왜 아무 호응도 않는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길을 왜 또다시 가느냐. 이제 연기 잘할 것 같은가. 거울 보니까 아까운가.(웃음) 음, 둘 다.(폭소) “인간관계에 대한 노련함이 없어서, 비즈니스에 서툴러 힘들었지만 일 자체는 매력 있고 좋은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더구나 여전히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시고. 이 일은 그렇더라고요. 한번 연기자면 영원히 연기자구나, 내가 이제 연예인 아니라고 해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구나, 피할 수 없는 거구나, 그럼 부딪혀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고. 그리고 여태 한 가지 역할밖에 한 게 없어요. 순애보에 울고 짜고 우울한.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요. 그런 미련도 있었어요.” 이제 버틸 수 있겠나. “인생은 어차피 자기 선택이니까. 세상엔 공짜가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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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예인을 직업이라 한다. 그게 신분인 줄 아는 세상인데. 그는 신세 한탄 따위 않는다. 그런다고 누구도 뭐랄 수 없는 사연인데. 그는 어떤 비위도 부러 맞춰줄 생각 없다. 그 바닥 일이 결국 다 영업이고 장사인데. 연기라는 작업에 능하나, 연예인이란 직업과는 이렇게 불화하는 자, 처음 본다.

그런데 말이다. 제 선택의 결과, 스스로 감당하고 생겨 먹은 대로의 자신, 배신치 않으려는 이 강단 세계관 자존감. 연예인이고 나발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품위 있지 않은가.

그가 제 과거를 어찌 처리할지는 나도 모른다. 어느 날 기자회견 할지, 언제까지고 침묵할지. 하지만 그게 어떤 선택이든, 앞으로 내 한 표는 그의 것이다. 이런 정도 사람이면, 어떻게든 제 역경 넘어, 마침내 제 길 가는 거, 정말이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야 공평하다. 그리고 그런 게 드라마다.

그 역에 캐스팅될 때까지,

건투를 빈다, 황수정.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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